• 최종편집 2024-06-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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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족은 중세 시대 때는 소수 민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 동맹 등으로 외교적으로 자주성을 지켜내면서도 스페인 왕국 성립에 참여해 스페인 시민이 되어 동화되는 등 유연한 면모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통합 스페인 왕국의 전신인 아라곤 왕국, 카스티야 왕국, 나바라 왕국의 왕가들은 모두 바스크 민족의 왕이었던 산초 3세의 후손들이다. 결국 스페인의 중세 왕조들은 바스크족의 후예들, 그리고 바스크족이라는 이렇게 스페인 제국 출발의 핵심에는 바스크 민족이 있었다는 것이다. 스페인계와 독일계 합스부르크 가문에도 이들 바스크족의 혈통이 들어간다. 게다가 프랑스에 여왕을 결혼시킴으로써 결혼 동맹으로 동군연합이 되었고 위그노 전쟁에서 부르봉 왕가의 외가로써 참전해 부르봉 왕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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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스페인 바스크 주(州) 빌바오에 거주하는 바스크족 가족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바스크족들이 유럽 강대국들과의 결혼 동맹과 군사적인 지원에 성공한 결과 많은 유럽 강대국들의 왕가에 바스크족의 혈통들이 존재하며 그러한 이유로 인해 현재까지도 바스크족을 소수 민족이라 낮추어 보는 국가는 없고 스페인 내에서도 매우 위상이 높다. 중세 시대 바스크족은 다른 유럽인들과 다르게 바이킹들과 평화적으로 교류했는데 이들로부터 조선술, 항해술을 전수받았고 바이킹 몰락 이후에는 대서양의 주인으로 불렸던 만큼 조선술과 항해술에 매우 뛰어났다.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의 후원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도 이미 아메리카 대륙을 다녀왔던 바스크족이 콜럼버스의 모험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어획, 고래잡이, 선박, 철광석 수출 등의 사업을 했고 영국, 북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며 무역 흑자로 막대한 수입을 올려서 당시부터 매우 부유한 민족들이었다.


바스크 지방은 원래 나바라 왕국의 영토였지만 1512년 스페인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다만 통일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연합체로 구성된 국가 체제였기 때문에 지방 분권의 특성이 강했고 다른 지방들이 그러하듯이 바스크 지방 또한 폭 넓은 자치를 누렸다. 특히 스페인의 군주들은 카탈루냐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에 바스크 지방의 지원을 받았고 그 대가로 바스크 지방에는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다. 19세기 말 산업 혁명 시기 영국 자본이 많이 유입되면서 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했고 금융 쪽에 강하다는 점은 지금도 남아 BBVA 은행(라리가 공식 스폰서인)과 이베드롤라(Ibedrola) 은행의 본사가 빌바오에 위치하고 있다. 바스크인들이 경영하는 몬드라곤 협동 조합은 독특한 운영 방식으로 대부분의 근무처와 다른 장점을 내세워 웬만한 대기업 이상의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일자리 창출 또한 우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원래 바스크 지역은 자치권 확대 약속 때문에 공화 진영에 가담했지만 공화 진영 중 가장 보수적 색채가 짙은 지역이었다. 바스크 지역은 전쟁 전부터 중앙 정부와 멀리 떨어져 나머지 유럽, 아메리카와의 각종 비즈니스로 인해 벌어들인 돈을 지역 사회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현지 산업 노동자들과 소위 '민족 자본가'의 갈등이 심하지 않은 편이었고 바스크 가톨릭 사제들 또한 스페인 전국 규모의 극우 정치판과 거리를 두어 바스크 지방 자체가 전반적으로 스페인 다른 지방보다 좌우 계급 및 이념 갈등, 세속주의와 카톨릭 교권 사이의 갈등이 확연하게 적었던 지역이었다. 이러니 대외적으로 자치권 확대를 위해 군인들이 밀어주는 스페인 중앙 집권적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공화국 정부와 전략적인 동맹을 맺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나머지 스페인 공화파 진영을 장악했던 아나키스트들이 주도한 사회 혁명과 무관하게 돌아가게 된다.


바스크족은 가부장적인 문화를 가졌던 로마에 동화되면서도 특유의 전통적인 남녀 평등 상속 문화를 중세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도 고수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에서 전통적으로 살리카 법이 적용되지 않았었고 이것이 유래와 전통이 되었던 민족이다. 1937년에 바스크 지역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국민 진영에게 항복했을 때 바스크 지역 정부는 국민 진영에게 평화적인 대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항복을 조건으로 맺어진 그 약속은 결국에는 지켜지지 않았다. 그 유명한 게르니카가 바스크 지방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프랑코 정권 수립 후에는 중앙 집권화 정책으로 인해 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바스크족의 무장 투쟁 단체인 ETA가 등장했고 2018년에 공식적으로 해체될 때까지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ETA는 평화적으로 독립을 요구했던 카탈루냐와는 달리 행동에 더욱 적극적이었는데 이들은 스페인 중앙 정부 인사를 납치해서 죽이거나 정부 건물에 폭탄 테러를 하는 등 무력 투쟁이 주류였다. 


한때는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분리주의 테러리스트 중 가장 악명 높았던 지역 중 하나가 바스크족이었다. 이에 대한 일례로 1992년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및 세비야 엑스포,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이었다는 역사의 기념비적인 날들이 이어지며 ETA가 테러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정작 ETA는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한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주민들 중에 스페인과 화해하며 무장투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1980년대 중후반부터 신입 ETA 전사가 거의 입단하지 않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독립 투쟁을 주장하는 혁명세도 걷히지 않아 거의 쇠퇴해갔다. 이로 인해 무장 폭력투쟁은 완전히 사라졌고 스페인 정부의 통치에 순응하고 있지만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더불어 바스크는 스페인 정부에서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지역이다. 한 때, 대한민국의 외교부 사이트에서조차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 내에서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되었을 정도였다.

 

스페인의 락그룹 라 오레하 데 반 고흐(La Oreja de Van Gogh)의 멤버이자 작사 담당인 파블로 베네하스(Pablo Benegas)의 아버지인 호세 마리아 베네하스(José María Benegas, 1948~2015)가 스페인 사회노동당(Partido Socialista Obrero Español)의 국회의원을 역임했을 정도로 최근 바스크족의 스페인 정치에 참여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2004년 스페인 총선거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인민당에 압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에 마드리드 지하철 테러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원내 1당을 차지했던게 컸고 그로 인해 집권에 성공했지만 2008년 총선 이후, 이후로 인민당 정부로부터 이어졌던 부동산 호황이 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자금줄이 막히다시피하며 처절하게 붕괴되었다.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붕괴되자, 많은 기업들이 파산의 길로 접어들면서 전체 실업률이 금융위기 이전의 3배 이상으로 뛰어오르고 청년실업률은 40%-50%를 넘나들기에 이르렀다. 


경제위기 이전에 30%대였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중도 은행 구제에 대량의 재정을 소모하면서 100%를 넘기기에 이르면서 국가 경제 파탄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스크주 지역은 스페인에서 경제 수준이 월등히 높은 지역이고 부자 동네임을 자처하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보다도 1인당 GDP가 훨씬 높다. 카탈루냐의 경우 프랑코가 카탈루냐인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공업 단지 조성을 해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지만 바스크는 전혀 그러지도 않았기에 바스크족 스스로가 일구어낸 쾌거라 보는게 맞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내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주(州)에 속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스페인에서 가장 경제 사정이 나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 일례로 2010년 기준 안달루시아의 1인당 GDP가 22,000$인 데 비해 바스크는 41,000$다. 바스크의 경제력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실업률의 경우 2012년 바스크의 실업률이 14%였다면 안달루시아 지방의 실업률은 35%였다. 


그렇지만 급여 수준으로 볼 때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스페인 국립 통계청(INE)에서 발간한 연간 임금 구조 조사 (Encuesta anual de estructura salarial)을 보면 빠이스 바스코(País Vasco)의 평균 임금은 26,535유로, 스페인 전체 평균은 22,726유로다. 앞서 언급한 안달루시아 지방은 20,891유로이며 가장 적은 소득의 임금은 19,278유로의 카나리아 제도로 나타난다. 스페인에서 가장 소득이 높고 전체 평균보다 20% 가까이 높으니 바스크 지역의 경제력은 스페인 여타 지역보다 우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스크는 고래 잡이 산업으로도 유명했다. 9세기부터 시작된 바스크 지방의 포경 산업은 주 본거지인 비스케이 만의 고래가 줄어들자 아이슬란드나 심지어 북아메리카의 뉴펀들랜드 섬까지 진출했다. 나중에는 영국과 네덜란드에 뒤쳐지기는 했지만 이들도 바스크 출신 포경 선원들을 상당히 많이 고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로 진출한 선원들 사이에서 아이슬란드어와 바스크어의 피진어(Basque-Icelandic pidgin)가 생겨나기도 했고 북아메리카에 남은 유일한 프랑스 영토인 생피에르 미클롱(Saint-Pierre et Miquelon)의 국기에 바스크 지방 깃발이 삽입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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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스크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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