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30(일)
  • 로그인
  • 회원가입
  • 지면보기
  • 전체기사보기
 

중세 유럽의 신기원을 이루었던 프랑크 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최근 200년 동안 학자들마다 견해가 달랐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문화나 민족학 연구 결과 최근에는 이 민족이 전통적인 게르만 계통 민족 국가이며, 켈트의 후예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이들 은 단일한 부족 체계가 아니라 라인 강 동부 지역, 중, 하류 일대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살리(Sali) 족, 리부아리(Livuari)족과 오늘날 네덜란드, 벨기에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카티(Cati) 족을 포함한 다 종족 공동체의 통칭으로 나타나고 있다. 


european_elections_germany_1_AP-960x600.jpg
사진 : A 19th century depiction of different Franks (AD 400–600) 출처 : Albert Kretschmer, painters and costumer to the Royal Court Theatre, Berin, and Dr. Carl Rohrbach.

 

특히 여러 소부족의 부족 집단에 대한 호칭이면서도 통칭적인 부분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카이사르가 게르마니아를 원정할 때 프랑크 족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다가 후일 토이토부르크(Teutoburg) 전투에서 최초로 언급되어졌다. 이들 프랑크 족은 살리 족이 지도적 지위에 있었으며, 후일 민족 이동 시기에 라인 강을 넘어 갈리아 지방으로 들어와 정착하게 된다. 


이에 나도 프랑크 족의 기원에 대하여 여러 연구를 진행했었지만 그 기원에 대하여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본 연구자가 프랑크 족의 기원에 대하여 문헌적으로 밝힌 것이 현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2세기 로마 비석에 새겨진 명문으로 추적한 결과 본래 켈트 인의 분파라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켈트 인의 분파인 전체 게르만 계통 민족들, 그들의 분파들을 정리해 본 결과 라인 강 일대의 분파, 폴란드, 체코 지역의 동유럽 일대의 분파, 그리고 발트 지역과 스칸디나비아의 고트 분파로 분류할 수 있는 가운데 프랑크 족과 수에비 족, 부르군트 족은 라인 강 분파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들의 현실적인 기원은 오늘날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사르의 정복 이후 갈리아-게르마니아 속주는 로마 제국의 보호 아래 로마 영내에서 이주해온 귀족들과 게르마니아 부족장들의 권한은 미증유로 강화되었다. 로마 귀족들과 게르마니아 부족장들은 공지를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여 거대한 영지를 구축했다. 그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제정 로마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 대지주들의 압제적인 태도와 횡포로 인하여 화폐의 인플레, 물가 상승 등 여러 가지 사회 악재가 초래되었고, 가난한 부족민들의 재정 부담은 날로 배가되었다. 


게다가 권위적인 경제 정책은 군인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갔고, 이 모든 현상이 시골의 사회적 위기를 가중시켰다. 초기에 소규모의 약탈로 시작된 반란은 3세기 후반부에 몰락한 농민들의 폭동인 자크리(Jacquerie)의 난으로 크게 번지게 된다. 자크(Jacques)는 프랑스에 거주한 농민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이들의 반란을 자크리의 난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특히 1358년 흑사병의 창궐과 백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북부 프랑스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 때부터 자크리(Jacques)의 난은 전체적으로 농민 반란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정착되었다.


그들은 대지주 귀족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옹호한 로마 제국의 낡은 지배 체제에 대해서도 강하게 저항했다. 연이은 농민들의 반란으로 인해 갈리아-게르마니아 속주에는 불안과 무질서가 창궐했고, 이러한 사회적 혼란은 알라만 족과 프랑크 족과 같은 게르만 계통 민족들의 반란으로 인해 더욱 증폭되었다. 233~234년에 최초로 서부 게르만계 혼성 부족인 알라만 족이 원주지였던 엘베 강 유역으로부터 이동하여 라인 강을 건너 플랑드르의 로마 속주까지 진출했다. 이에 진노한 로마 황제 막시미누스(Maxininus, 재위 : 235~238)는 알라만 족들을 다시 엘베 강까지 밀어냈지만 게르만 계통 민족들의 로마로의 영내 이주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로마 제국의 갈리아-게르마니아 무정부 상태를 이용해서 게르만 계통 민족의 이동은 계속 이어졌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있던 4세기 중반에 아시아 기마유목민족인 훈족이 동유럽에 침입했다. 이에 고트족이 발칸 로마 속주로 이주함에 따라 이것을 계기로 게르만 계통 민족들의 이동이 시작되어, 그 후 약 200년간 유럽은 민족 대이동의 암혹 시대가 지속되었다. 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훈족에 의해 촉발된 게르만 계통 민족의 대이동은 고대와 중세를 구분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프랑스 사가들에게 이 사건은 이민족의 대 침입으로 규정되었으며, 독일사가에게는 민족 대이동으로 규정됨에 따라 서유럽 사가들의 서술 또한 달라지게 되었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중세 유럽의 신기원을 이루었던 프랑크 족의 기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