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03(수)
  • 로그인
  • 회원가입
  • 지면보기
  • 전체기사보기
 

페니키아(Phœnicia)는 고대 가나안의 북쪽에 근거지를 둔 고대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도시 국가의 중심 지역들은 오늘날의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로 이어지는 해안에 있었다. 과거에는 페니키아 문명이 약 3200년 전에서 약 2900년 전까지 지중해를 가로질러 퍼져나간 진취적 해상 무역 문화를 보유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발굴의 결과, 페니키아 문명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6000년 전에 존재했던,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계하는 기시(Gish) 문명과 연계되어 있다. 


564316_0.png
사진 : Phoenician ship at Sidon port, 출처 : Britannica, Phoenicia, Written and fact-checked by Article History

 

학자들은 기시 문명이 아프리카의 쿠마 문화(Kuma), 나일 강 유역의 쿠시(Kush) 문화와 연결 고리가 있으며, 그 관계를 연구 중에 있다. 이집트의 기록에 의하면, 페니키아인들은 무역 활동을 위해 북아프리카의 현 튀니지(고대 카르타고) 지역을 중심으로 알제리,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권역,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 도시,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 도시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페니키아 본토의 도시 중 가장 완벽하게 발굴된 도시는 시돈과 티레 사이에 있는 사렙타이(Sarebthai)다. 페니키아는 최초로 갤리선 선박을 사용한 문명으로 이를 이용한 지중해 무역으로 번성했다. 


페니키아 문명을 이룬 이들이 단일 민족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같이 도시 국가를 이루었고, 각 도시 국가는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었다. 페니키아 도시 국가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협력하기도 했으나, 도시 간에 갈등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레반트 지역의 티레와 시돈은 페니키아의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였다. 고대 근동 지역의 여러 왕국들은 각 시대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관개 농업을 발전시키고, 국가 간의 무역, 외교, 동맹 체결, 패권을 획득하기 위한 전쟁 등을 통하여 교류해 갔다. 고대 근동의 왕국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각 중동 제국들의 영토를 효과적으로 정치 및 사회로 통치하기 위해서 관리들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 구역을 만들었고, 강력한 식민지 정책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개의 대륙 사이에 놓인 팔레스타인은 여러 민족의 이동과 이주의 통로였으며, 그 결과로 인해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상당수의 셈어계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셈족들 가운데는 아람족, 모압족, 가나안족, 아모리 족 등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인도와 유럽 언어를 사용하는 아나톨리아의 하티 족으로 알려진 헷족, 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후리 족, 필리스티아라 불리는 블레셋 인 등이 살았다. 지중해 연안 곳곳에 도시 국가들이 세워졌으며, 예리고, 므깃도, 하솔, 게셀 등은 견고하게 요새화되었다. 이 시기에 페니키아에서는 초기 가나안 언어인 알파벳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가나안 언어는 고대 히브리어의 모체가 되었다. 


고대 근동에 대한 이와 같은 관찰은 이스라엘의 기원을 확인하는 것에 있어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나, 이스라엘 초기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히브리 성경 내에 들어가 보면 고대 팔레스타인 나름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특징과 만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는 고대 근동의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함과 동시에, 그들만의 고유한 상황과 특수성을 고려해야만 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족장 이전의 팔레스타인의 환경에 관해서는 세계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는 히브리 성경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始祖)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창세기 12장)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토대로 하여 족장 이전의 가나안 땅의 환경에 관하여 약간 그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정도이다. B.C 약 2000년경의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고대 근동의 역사는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형태의 대변혁의 시기였다. 이집트는 신왕조의 시작과 더불어 막강한 세력을 남북으로 팽창시켜 나갔다. 북쪽의 히타이트 제국 역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이러한 강대국들의 틈에서 오랫동안 지배를 받아 오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아모리 인들의 이동과 함께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들의 이주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밖에도,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지역에는 에돔(Edom), 모압(Moab), 암몬(Amon), 블레셋(Bleset) 등의 세력들이 머물러 살면서, 가나안 문화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들 세력은 주로 높은 문화 수준을 갖춘 도시 국가를 형성하였다. 한 통치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귀족 계급을 두고 있었으며, 때로는 도시 국가 간의 동맹 체제를 이루면서 중앙 집권 형태의 구조를 가진 제국들과 맞서 나갔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고대 페니키아의 해상 활동과 시돈의 경제적 성장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