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0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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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그렇듯이 터키 디야르바크르에서 쿠르드족과 쿠르디스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디야르바크르의 분위기는 반(反) 터키 정서가 여전하다. 쿠르디스탄의 수도는 디야르바크르이고 쿠르디스탄의 영토는 북쿠르디스탄, 이라크 쿠르디스탄, 로자바 쿠르디스탄으로 나뉘어 있다. 디야르바크르는 북쿠르디스탄에 속해 있다. 디야르바크르를 걸어보면 중심대로인 가지대로에 이스라엘 국기가 바닥에 새겨져 있다. 보통 국기라면 어딘가에 내걸거나 하는 것이 원칙인데 바닥에 새겨져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는 밟고 가라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한 나라의 상징인 국기 모형이 이렇게 일반인들에게 지저분하게 밟히는 것은 해당 국가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 없다. 

 

그 대신 팔레스타인 국기는 도처에 팔고 있는데 이스라엘 국기처럼 바닥에 새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한 쿠르드인의 감정이 어떤지 물어보니 10명에서 7명은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스라엘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은 "배신자(Betrayer)" 라는 것이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그 다음이다. 모두들 쿠르드족이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 쿠르드족은 현재 이스라엘을 증오하고 있다. 왜 그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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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터키 디야르바크르 중심도로인 가지 도로에 새겨진 이스라엘 국기,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고 있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1931년 유태인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의 한 인물이 쿠르디스탄에 잠입했다. 그는 현 팔레스타인 땅에 유태인들을 들어가게 하여 이스라엘 건국의 준비를 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디야르바크르를 방문해 쿠르드인들을 비롯한 그곳의 비 아랍권 세력들, 이란 및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인들과 접촉하여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장기적 비전을 구축하려 했다. 

 

그는 쿠르드인에게 미국과 영국 및 서방 국가들이 유태인들을 중심으로 한 국가를 건국할 것이니 이 건국을 지지해주고 또한 지원해준다면 쿠르드인이 터키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며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라크와 아르메니아 일대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가 되어달라 요청했고 이런 그의 제안에 쿠르드인들은 이 모사드 요원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모사드 요원이 바로 모사드 정보기관의 창립 국장인 레우벤 실로아흐(ראובן שילוח)이다. 이 때부터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이 만들어지는데 쿠르드인들이 이를 적극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당시 이라크의 유태인들은 이란 왕정과 이스라엘 정부, 쿠르드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쿠르디스탄 지역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이라크를 탈출했다. 한편 쿠르드인들은 이 기간 동안 터키 내에서 소요 사태를 일으켜 터키의 관심을 소요 사태로 향하게끔 하고는 이스라엘 건국에 대해 큰 관심을 쏟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돕기도 했다. 쿠르드인은 17년이 지난 상황에도 이스라엘의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따라서 비 아랍권 국가 중 하나였던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또 다른 비 아랍권인 쿠르드인들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1958년부터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쿠르드인 무장단체 페쉬메르가를 1970년대까지 지원하기도 했다.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이스라엘군은 쿠르디스탄 지역으로 파병하여 병원을 지어주기도 했고 식량과 무기도 지원하면서 그들의 무장 독립 투쟁을 도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끝내 돕지 않았다. 무장 독립 투쟁에 식량과 무기 지원하며 돕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들의 독립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에게서 쿠르드는 터키와 이라크를 대신 싸워주면서 이들 국가들의 국력을 낭비하게끔 하는 존재로 이용했던 것이다.

 

1975년에는 이란(팔라비 왕조)-이스라엘-쿠르드가 삼각 동맹을 맺어 이라크를 견제하여 중동 국가들을 상호 간 혼란에 빠지도록 했다. 이후 이란에서는 이란 혁명이 나타나 제정이 폐지되고 새로운 신정 정부는 반미와 반 서방, 반 이스라엘주의를 내세우며 이들 동맹에서 이란은 제외되었고 이스라엘과 쿠르드의 동맹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이 때 호메이니의 탄압을 받던 일부 쿠르드인들은 이스라엘로 망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인해 이스라엘과 다수의 쿠르드인들은 서로 협력적인 관계가 되었고, 중동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전체적인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서는 반이스라엘 보이콧이 적었으며 북쿠르디스탄에는 이스라엘을 더욱 응원하는 등 오히려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만든 제품들을 적극 사용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쿠르드인들이 훨씬 이득이었다. 적대국에서 소요사태를 일으켜 이스라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그와 같은 혼란 기간 동안 중동과의 잇달은 전쟁에서 소모된 국력을 그 사이에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쿠르디스탄의 독립 국가 승인에는 매우 미온적으로 나왔다. 


이스라엘이 약속을 지키진 않지만 주변 중동 국가들에게 있어 미운 털이 박혀온 쿠르드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에 독립을 승인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했다. 이미 이스라엘과 공동 운명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2000년대에는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 요원 수백명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지역과 이란, 시리아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쿠르드 특수부대원들을 훈련시키며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미국-이라크 전쟁에서 결국 이라크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이 타도되고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을 때, 이스라엘은 시아파 민병대를 견제하는 세력으로 쿠르드인 특수부대를 활용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아울러 이란 영토내에 이스라엘 첩보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지를 만들려 했다. 이 또한 쿠르드인들이 적극 도왔고 사담 후세인이 타도 되었을 때, 최소한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기대했지만 미국 측에서 이를 거부해 이들 또한 독립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런 미국을 전혀 설득하려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미국에게 쿠르디스탄 독립을 반대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게다가 쿠르드족 독립의 운을 띄워주면서 이라크 내 수니ㆍ시아파와의 갈등 및 이란을 견제하는 효과까지 한꺼번에 노리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전략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7년 이라크 쿠르디스탄 독립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성명이었다. 그리고 2019년 터키가 본격적으로 쿠르디스탄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본인의 트위터에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쿠르드 지역에 대한 터키의 침략을 규탄하고 터키와 그 대리인들의 쿠르드족 인종청소에 경고한다(Israel condemns Turkish aggression against Kurdish areas in Syria and warns of ethnic cleansing of Kurds by Turkey and its proxies)."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용감한 쿠르드인들에게 인도주의적 도움을 줄 준비가 됐다(Israel is ready to provide humanitarian assistance to brave Kurds)고 했다. 이건 쿠르드인 입장에서는 웃기는 일이다. 쿠르드인이 원하는 것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으로부터 완전한 쿠르디스탄 공화국을 설립하고 독립하는 일이다.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ssistance)"이라는 단순한 사탕발림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독립과 정부 수립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쿠르드 독립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쿠르디스탄으로 인해 중동에서 새로운 소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경계했다. 따라서 터키군이 쿠르드군을 공격한 것은 사실상 미국 정부의 묵인 아래 진행되었던 것이라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고민이 컸던 것이다. 당시 쿠르드인은 시리아에서 미군을 도와 IS 격파에 나서서 실제 이들 토벌에 공을 세우고 막대한 인원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이 시리아 철군을 결정하면서 터키군 군사작전에 불개입을 선언했다. 쿠르드인들은 미국과 서방국가, 이스라엘 등에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셈이 되었다. 

 

당시 AFP통신은 "미국 지도자의 쿠르드인 포기는 이스라엘에 깊은 우려를 초래했다"고 분석했을 정도니 이스라엘의 고충 또한 알만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미국의 손을 들어주며 또 다시 쿠르드를 배신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2019년 하반기에 유태인들은 2000년 동안 박해와 추방으로 고통받았다며 이스라엘에는 쿠르드 출신 유태인들이 많고 중동에서 온건하며 서방 친화적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쿠르드인들은 이 때 이스라엘에게 자치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인과 군사 · 경제 등에서 우호 관계를 유지하명서 정작 팔레스타인의 자치독립은 인정하지 않아 그 모순점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쿠르드인들은 이스라엘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작년 10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벌어지자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응원했다. 이제는 쿠르드 노동자당인 피케이케이조차도 이스라엘을 돕지 않을 것임을 선포했다. 쿠르드인들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이스라엘은 이 모든게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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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디스탄과 이스라엘의 관계, 마냥 우호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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