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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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KSLV 계획에 따라 2022년 개발 완료한 로켓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저궤도 실용 위성 발사용 로켓으로 알려져 있다. 누리호의 발사로 인해 한국은 세계 11번째의 자력 우주 로켓 발사국이 되었으며,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개국 반열에 올랐다. 이러한 누리호의 개발사업은 10여 년 전, 나로호에 투입된 예산 5천억 원의 4배인 2조 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며 누리호에 사용되는 기술들은 향후 개발할 KSLV-IV의 기술적 기반이 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인 '누리'는 당시 경상대학교 에너지기계공학과 학생인 백승엽 씨가 응모한 명칭으로 대국민 명칭 공모전을 통해 10,287건의 후보 가운데서 결정되었다고 한다. 누리호는 총 3단의 액체 로켓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에는 추력 735 kN의 75톤급 엔진 4개를 클러스터링하여 총 300톤의 추력을, 2단에는 75톤급 엔진 하나를 사용한다. 3단에는 7톤급 엔진 하나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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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의 가가린 발사대에서 채석한 돌, 출처 : 나로호 우주센터

 

해당 설계에는 ESA의 우주발사체 아리안 시리즈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1~2단에 추력이 높은, 3단에 추력이 낮은 엔진을 배치하는 구성이 그러하다. 특히 누리호 설계안 중에서는 아리안 시리즈의 상단 엔진인 HM7B를 면허생산하는 안까지 있었으니 어느 정도 설계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도 있는 편이다. 차이점이라고 하면 사용하는 연료의 종류와 고체 부스터의 유무 정도이다. 누리호는 전 엔진이 케로신인 반면, 아리안 1~4는 사산화이질소와 UDMH를 사용하였고 6톤급 엔진에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이용하였다. 

 

탑재체(payload)의 중량이 1톤을 넘는 것을 기준으로 세계 7번째 독자개발 로켓으로 이는 한국의 우주개발 기술력이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하는 중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독자 개발이 한국의 노력도 대단한 성과지만 그 물밑에서는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누군가의 도움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는데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해 미국도 도와주지 않았던 우주 개발 사업을 러시아가 부지까지 제공해가며 도와줬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수장고에 가면 한국 러시아의 우주개발협력을 상징하는 붉은색 돌 하나가 보관되어 있다. 이는 2007년 러시아 연방우주청 장관이 한국-러시아 우주장관 회담을 위해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했을 때 가져온 ‘기념품 돌’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우주개발 시작점을 알린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의 가가린 발사대 아래에서 채석했다고 전해지는 말 그대로 "우정의 돌"이다.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에 대한 역사를 본다면 강대국들의 정치외교적 변혁과 이로 인한 여러 측면의 아이러니들이 얽혀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0년 가까이 ‘한미동맹’이라는 긴밀한 관계로 지내왔지만, 정작 한국의 우주 로켓 개발에 도움을 준 곳은 러시아 등 과거 미국과 냉전을 벌여왔던 구소련권 국가들이었다. 

 

미국은 1987년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MTCR)를 창설한 이래 미사일 완성품은 물론 관련 기술과 부품의 국가간 거래를 철저히 막아왔다. 동맹국인 한국도 예외없이 이를 통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적성국가였던 옛 소련권 국가들이 한국에 우주기술을 사실상 전수해 줄 수 있었던 이유는 1980년대 말에 공산권 체제가 붕괴되고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등의 엄청난 대혼란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로켓 개발의 역사는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1958년 인천 고잔동 해안에서 한국 최초의 국산 로켓이 시험 발사 되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78년엔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차용한 백곰(NHK-1)이 200㎞ 거리를 날았다. 우주를 목표로 한 본격적인 로켓 개발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족 이후부터로 나타난다. 1993년 발사된 KSR-I(Korean Sounding Rocket-I)이 본격적인 우주개발의 시작이다. 그러나 KSR-I는 1단짜리 과학 로켓에 불과했다. 우주개발용이라는 목표는 있었지만, 실제 우주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고체 연료를 쓴 로켓이었던 KSR-1은 관측용 장비를 탑재하고 최고 고도 39㎞에 77㎞의 거리를 190초 동안 비행했다. 1997년 발사에 성공한 KSR-2는 2단이었지만, 역시 고체 로켓이었다. 추력이 KSR-I의 2배였던 KSR-2는 당시 151㎞ 고도까지 올라가 국내 최초로 우주 X선을 관측했다. 하지만 고체 로켓은 사거리를 제한하는 한국-미국의 미사일 지침으로 인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수 있는 우주 로켓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2002년 발사에 성공한 KSR-3은 1단에 불과했지만, 한국 최초의 액체연료 추진 과학로켓이었다. 추력 13t의 가압식 액체엔진을 달고 고도 43㎞, 거리 80㎞를 비행했다. 이때부터 러시아와 우주기술 협력이 시작됐다. 당시 항공우주연구원은 미국ㆍ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 협력을 추진했지만, 러시아 외에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당시 경제 사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러시아는 국가 핵심 기술을 일부 팔아서라도 외화벌이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당시에는 액체로켓 엔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러시아 켈디시 연구소를 찾아간 한국의 연구원들은 액체 로켓 설계 기술을 자문받고, 또 완성한 13t 엔진을 러시아 니히마시 연구소까지 가지고 가서 연소 실험도 했었다고 한다. KSR-3 다음이 2013년 1월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KSLV-1) 나로호다. 1단엔 러시아에서 들여온 추력 180t의 최신형 안가라 엔진을, 2단엔 고체 킥모터를 달았다. 2007년에는 개발한 터보 펌프를 시험하기 위해 러시아 니히마시 연구소에 가져갔다가 폭발사고가 발생해 현지의 시험설비까지 타버리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번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75t 로켓 엔진은 러시아의 액체로켓을 사실상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ㆍ역공학)한 결과였다. 누리호에 들어간 헬륨탱크는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 제품이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75t 액체 로켓 엔진 개발에 들어가 3년 여 만인 2018년 11월 누리호 시험 발사체(KSLV-2 TLV)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짧은 기간 동안 독자적인 액체 로켓과 발사체 체계종합 기술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자들의 피와 땀의 결과이긴 하지만 러시아 우주기술의 기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우주 개발의 역사는 사실상 러시아를 빼면 설명할 수 없는데 이러한 협력의 역사마저 부정하고 폄하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것도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대개 당시 좋지 않은 러시아 경제상 황에서 돈이 아쉬우니까 돈받고 했지 대단한 선심을 베푼 것처럼 했다며 예전에 수교할때 빌린돈도 못 갚아서 구식탱크랑 헬기로 갚은자들이라고 폄하에 나선 것이다. 이런 자들은 엄연히 "불곰사업"으로 국방상호 협력한 역사마저 부정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불곰사업이 없었으면 한국이 자랑하는 K-9 자주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날 세계 6~7위의 국방력을 가진 국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사업을 하든, 국가 간의 비즈니스에서는 공짜란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우리 한국인들은 어떤 국가가 도와주면 그걸 공짜로 했겠냐며 애써 폄하하려는 속성이 있는데 그 어떤 국가도 공짜로 하는건 없다. 6.25 때 미국이나 UN군에 속해 있던 국가들도 자국의 이익이 걸려 있던데다 그 어떠한 국가도 공짜로 우리를 돕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그러한 도움에도 지극히 계산적으로 나온다. 

 

천한 장사치에 노예 근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으니 그러한 계산적 속성에 불을 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폴란드에게 무기 수출한 것 가지고도 천박하게 나대고 있는데 폴란드가 선진국도 아니고 동유럽에서조차도 자국 경제력이 감당이 안 되는 국가가 한국 무기에 대한 대금을 과연 완납할 수 있을까? 그처럼 국제 관계는 돈놓고 돈먹기, 돈 싸움이기 때문에 공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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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로켓 개발의 역사, 러시아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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