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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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 중에서 수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은 집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루마니아이다. 집시의 정체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집시의 기원에 관한 문제도 분명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루마니아의 집시 전문가인 콘라드 베르코비치(Konrad Bercovici)는 “세상에서 집시의 수 만큼이나 집시의 기원에 대한 이론이 존재한다”고 언급하였던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집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우선 집시라는 용어의 시작은 그리스어 아칭가노이(Atsinganoi)에서 유래하고 있다. 아칭가노이라는 용어는 동유럽에서 많이 통용되었으며, 또한 집시들 자체에서가 아닌 외부인들이 그들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종종 경멸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루마니아 집시들은 이 용어보다 산스크리트 기원의 집시 언어인 ‘Rrom’이라는 용어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집시들은 다양한 국가들에 흩어져 생활했으며, 그 곳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요소들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곳의 여러 가지 문화요소들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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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루마니아 집시촌과 집시들,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 의 페이스북

 

하지만 이와 같은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집시라는 민족의 정체성은 항상 긍정적인 요소들만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고, 반대로 부정적인 면이 더욱 부각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루마니아의 집시들은 19세기 중엽까지 노예로 존재했었기 때문에 이들과 관련한 다양한 정황들은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상, 집시들의 노예제도와 관련한 여러 가지 흔적들은 오늘날까지 그들의 사회 구조 속에서 남아있으며, 루마니아 인들과의 관계 및 루마니아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집시 민족의 사회 내에서는 노예 제도와 관련하여 후유증을 상당히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수세기 동안 노예 제도가 지속됨으로 인해 집시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스스로의 책임으로 행하는 진취적인 정신 또한 약하게 되었으며, 어떤 사건에 대하여 체념하는 운명론적인 삶의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집시들은 과거 자신들이 속했던 계급이나 직업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지주, 수도원 그리고 영주 등 그들이 어디에 귀속되느냐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예 제도는 아직도 집시들의 정신세계에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일상 생활에도 비슷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과거보다는 적게 나타나지만 아직도 집시들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집시의 정체성은 종종 열등 혹은 하위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집시들의 동향을 보면 이탈리아와 로마 시 정부가 이탈리아 사회에 동화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중,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1인당 연간 최대 1000유로(약 133만원)를 주는 조건으로 본국인 루마니아로 돌아가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안건을 내놓았다. 라지 시장은 최근 루마니아를 방문해 집시 재정착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며 집시들에 대한 사회보장을 루마니아가 해줘야만 이행될 수 있는 부분이라 역설했다.

 

하지만 철거가 이루어진 거주촌에서 루마니아로 돌아가겠다고 신청한 집시들은 14명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집시들은 길거리에 거지같은 신세로 현지인들에게 돈을 구걸하거나 주머니를 터는 소매치기들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는 다른 집시 거주촌들도 철거하겠다고 밝혔고 실질적으로 철거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가 겉으로나마 경제적인 유인을 내걸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노골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집시를 추방하고 있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맞섰던 네오나치 민병대 출신들이 크림반도를 상실한 분노의 화살을 집시에게 돌리고 있다. 수도 키예프에서는 지난 4월 ‘C14’라는 극우 단체가 집시들의 천막촌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을 행사해 집시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이후에도 네오나치들, 프라비 섹토르 집단들의 집시 거주촌 공격이 잇따르고 있으며 이들은 인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탄압하고 있다. 집시들은 야생화 부케를 팔아 생활을 유지할 뿐 키예프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극우 단체들은 이들이 절도와 구걸을 하며 도시를 더럽혔다고 주장한다. 일련의 공격 이후 키예프에서는 집시를 보기 어렵게 되었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폭력을 방관해왔다고 지적했다. ‘C14’는 철거 폭력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버젓이 인터넷에 올려 정당성을 내세워 자신들의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해 합리화했다. 2016년 우크라이나의 다른 극우 단체 회원들, 특히 동부의 아조프 대원들은 집시 남성들을 집중적으로 살해했다. 이들은 집시 추적 장면을 ‘집시 사냥’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정부가 미온적으로 방관했던 이유로는 극우 인사들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전쟁 영웅’이었다는 점과 정치적 이용 가치가 있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엔 등이 항의하는 가운데 2017년에야 집시 거주촌 폭력 사건 관련자에게 가택 연금 처분을 내린 것이 인권 유린에 대한 처분이었다. 또한 우크라이나 극우 세력이 ‘소프트 타겟’으로 점철된 집시에 대해 탄압을 노골화하는 것을 두고 나치즘 또는 파시즘의 부활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집시 30만 명을 살해하는 인종청소를 감행했다. 


하지만 집시를 추방해야 한다는 주도자들은 이에 대한 인권 유린을‘사회 정화’라고 하면서 이러한 행동이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했다. ‘C14’를 이끄는 예우헨 카라스가 언급하기를 "우리는 파시스트로 불린다. 뭐라고 불리든 상관없다"며 “범죄자들에 대응하는 것일 뿐 인종주의적 차원의 공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도 자신은 인종주의자나 파시스트가 아니며 이탈리아 인을 우선으로 한 노선을 추구할 뿐이라고 말하며 집시들에 대한 인권 유린을 합리화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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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민족과 그들의 현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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