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8-1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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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그래픽이다.(그래픽=저널인뉴스)

 

한국에서 철학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철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 물음을 한 번 정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 그가 철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한다고 하면, 곧바로 그렇게 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라는 답변이 들릴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 나름대로 철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까닭을 성실하게 설명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에 호응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 보면 한국에 도대체 철학이 있기나 하는 것인가? 한국인에게 철학은 어떤 것인가? 이런 물음들도 이와 동시에 떠올릴 것이다.


한 여론 조사기관에서 오래전에 발표된 통계를 보면, 한국인들에게 ‘철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을 때, 한국인들은 철학이 점(占)/사주와 관련된 말(약 36%)이라고 응답하거나, 혹은 철학이 어렵고 따분하다(약 23%), 철학이 인생에 대한 말(약 22%)이라고 하고, 철학자(약 19%) 혹은 철학과 관련된 이론/책/명언(약 10%)이라고 답변했다. 또 철학이 심오하고 깊이가 있다(약 8%)거나, 철학이 학문과 관련된 말(약 8%)이라고 하거나, 철학적 관념(약 4%) 혹은 현실과 거리감(약 3%)이거나, 종교와 관련된 말(약 2%)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이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철학에 관한 이미지를 점/사주와 관련된 말이라고 응답한 것은 동양철학(약 21%)에 대한 관심도를 나타낸다. 또 철학이 어렵고, 따분하다는 응답은 형이상학(약 11%), 논리학(약 9%), 인식론(약 3%)에 대한 낮은 관심도를 반영한다. 그런데 학문으로서 철학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는 철학이 학문으로서 어려운 학문(약 80%)이라고 했고,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학문(약 77%)이라거나, 철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약 64%)이며, 철학 공부가 윤리의식과 관련이 있다(약 68%)거나, 내 삶에 필요한 학문(약 48%)이라고 답변이 있었다. 


이를 통해서 보면 윤리학(약 20%)에 대한 관심도가 다른 철학 분야에 비해 높은 까닭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인들은 가장 훌륭한 철학자로 동양 철학자로 공자(약 57%)를 뽑았으며, 서양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약 49%)를 뽑았다고 한다. 동서양을 통틀어서는 소크라테스(약 24%)가 첫 번째로 선택되었으며, 두 번째로 공자(약 20%)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이 여론조사가 다소 오래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현재에 비추어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인은 철학의 학문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여전히 철학이 어려운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에게 철학이란 실용적이지도 않고, 각자에게 너무도 먼 학문인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지금까지 철학에 관련된 철학책을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고 답변한 한국인이 약 74%라고 하고, 1∼2권이라고 답변한 한국인도 약 11%라고 하니 실로 충격적이라고 할 만도 하다. 도서관에 가보아도 솔직히 철학책을 읽은 한국인은 드물다. 독서율이 그다지 높지 않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철학이 다른 학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철학에는 논쟁이 있다는 점이다. 논쟁이 없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다른 학문일 것이다. 철학에 논쟁이 있다는 것은 각자가 어떤 문제에 관해 사유한다는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타당한 논거와 명확한 주장이 있다는 뜻이다. 서로 철학적 논쟁을 한다는 것은 질의응답이든 토론이든 특정한 형식에 제약되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이어야 한다. 


그것은 각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근거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스스로 생각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오늘날까지도 철학이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한국도 한때 철학에 대한 관심사가 폭발적으로 불었던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바로 시대정신이 과연 무엇인지를 한국인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을 했기 때문이다. 즉 시대정신의 화두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다 보면 철학이라는 사상의 보물상자를 누구든 찾기 마련이다. 보물상자에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보물상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단지 어떤 방법으로 보물상자를 찾을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철학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를 일본인이 철학(哲學)으로 번역한 데에서 유래한다. 이렇게 번역된 까닭은 필로소피아라는 말이 ‘philos’(사랑)와 ‘sophia’(지혜)로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哲學)에서 ‘철’(哲)이라는 한자는 ‘밝다’, ‘총명하다’, ‘알다’, ‘분명하다’는 뜻도 있지만, ‘도리(道里)나 사리에 밝은 사람’을 뜻한다. ‘철인’(哲人)은 바로 이러한 사람을 뜻하며, 보통 ‘현자’(賢者)라고도 부른다. 


고대 그리스어의 ‘필로소포스’(φιλοσόφος)는 바로 ‘철학자’를 뜻하는데, 이 말에서 파생된 말이 ‘소피스트’(σοφῐστής)이고, 이 의미는 ‘궤변가’라는 뜻도 되지만, ‘전문가’로서 ‘철학자’라는 뜻도 된다. 그런데 사실 이 ‘철학’이라는 말을 동양철학에 적용해 보면 다소 혼동이 불가피하다. 즉 ‘필로소피아’에 해당하는 학문이란 유학에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연구하는 ‘경학’(經學)이 아니라, 이른바 ‘성리학’에 해당하는 ‘도학’(道學)이라고 해야 한다.


‘도학’은 근본적으로 ‘공맹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수행한 것이기 때문에 ‘신유학’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철학적 논쟁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와 같은 논쟁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가쟁명(百家爭鳴)도 마찬가지다. 서양철학도 시기별로 주제별로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필자는 한국에서 철학이 논쟁이 없다는 사실을 종종 느낀다. 필자가 어느 세미나 발표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중심으로 논쟁적으로 다루었더니, 한 참석자가 왜 그렇게 싸우는 것만 다루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역사적으로 그렇게 진행되어 와서 우리에게 철학을 풍부하게 만들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논쟁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논쟁은 철학적 사유의 도구이고 수단이다. 또 철학적 논쟁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판단할 수 있고, 자신의 논거를 검증하거나 오류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한국에서 철학은 여전히 필요하다.


철학적 논쟁을 하기 위해서는 타당한 논리가 요구된다. 논리가 없는 사람은 그저 개인적 견해에 불과한 것일 뿐, 실로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거나, 억지 주장을 독단적으로 하는 자일 뿐이다. 각자가 논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막상 따지고 들어가서 자세히 보면 터무니없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인 경우도 많다. 


도처에 논리가 있지만, 논리를 각자의 논증으로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거기에 멈추지 말고 각자가 서로 논쟁할 문제라면 기꺼이 논쟁하고, 서로 토론을 할 문제라면 솔직하게 토론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철학에 입문한 자다. 철학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에게 철학은 여전히 어려운 학문으로 인지되어 있지만, 그래도 철학을 누군가는 연구하고 공부한다. 그러나 토론과 논쟁이 부족하다 보니 서로 겉돌거나 단순히 질의·응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철학이 한 철학자의 사상을 텍스트를 통해 이해하는 강의방식으로 전개하다 보니, 이를 주관하는 사람의 권위주의에 의존하게 되거나, 특정한 철학자의 관점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도 한국의 철학적 현실이다.


철학의 대중화에 기대어 대중의 흥미에 맞추면서 철학이 생산적이지 못하고, 그저 대중의 흥미에 소비되는 방식은 철학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아무런 생각을 갖지 못하고 그저 감각적으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소비되는 것은 철학적 태도가 전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면 된다. 스스로 답변을 구할 수 없다면 답변을 얻기 위해 스스로 찾아 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어느 정도의 답변을 찾을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더 진행되어야 하니까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 진리는 스스로 찾으려는 자의 것이지, 그냥 쉽게 주워 담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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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국에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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